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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전병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메밀전병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

강원도 봉평에는 매년 9월 초쯤이면 메밀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핀다. 작년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평의 한 폐교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을 관람했다.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메밀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메밀꽃을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연극 공연을 하는 폐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다. 예상한 대로 하얗게 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작고 귀여운 수천 수만 송이의 꽃들이 바람에 한꺼번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그렇다고 해서‘정신이 혼미할 지경’까지는 아니었다.
이윽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폐교 운동장의 어느 한 쪽일까? 몇 그루의 나무에 반짝이는 전구 장식을 세련되게 설치해 폐쇄된 실내 무대 못지않은 자연스럽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작은 도랑이 있었는데, 그곳에 핀 메밀꽃들이 배우들의 연기나 연극의 흐름과 무관하게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메밀꽃은 나에게 작고 귀여운 꽃일 뿐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공연장을 벗어나 폐교 한가운데로 나갔다. 사람들은 이 공연을 맡은 유시어터의 단장인 배우 유인촌 씨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고, 내 친구들도 무리 속에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유인촌 씨를 넋이 나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멋진 배우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메밀꽃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아!”하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도록 만든 것은 바로 달빛을 받고 하늘거리는 메밀꽃이었다.

 

아! 정말 이렇게 저녁 달빛을 받으면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메밀꽃 군락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효석의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밤 풍경이 왜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한 에너지가 넘실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로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어느 달밤이라면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에서 펼쳐지는 밤 풍경 속으로 발길이 저절로 옮겨질 듯하다.
소설 속에서 얼금뱅이에 왼손잡이, 가족도 친척도 없는 장돌뱅이 허생원은 봉평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인 조선달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렇게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이제 보름이 갓 지난 부드러운 달빛이 함께하는 길이라면 장돌뱅이 삶의 고단함마저 녹여버리는 낭만이 느껴지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메밀꽃에 정신을 잃은 나는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행로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1920년대 봉평에서 대화로 이어지는 밤길을 배경으로 하는『메밀꽃 필 무렵』은 낭만적이면서도 토속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간 본연의 본능과 애정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특히 장돌뱅이 삶 자체가 정착보다는 이동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인생처럼 그들 삶의 이야기는 길에서 들리고 길에서 발견된다. 길을 가다가 인연을 맺고, 길을 가면서 우정을 나누고, 길을 가다가 어렴풋이 자식이라고 혹은 아버지라고 느껴지는 만남까지도 만들어진다. 장돌뱅이 삶의 애환이란 것이 이처럼 길에서 시작되고 길에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슬슬 고된 장돌뱅이 삶을 정리할 때가 다가오는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아직은 조금 어리게 느껴지는 동이라는 청년 장돌뱅이가 달빛을 받으며, 메밀꽃이 산허리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할 지경이 되어버린 봉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허생원은 아주 오래전에 봉평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여인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런 인연이 가능했던 것은 달밤과 메밀꽃이 함께 어우러진 낭만적인 분위기가 한몫 했음이 분명하다. 메밀꽃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의 본능을 부추기는 낭만적이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가 있다. 동행 중인 청년 장돌뱅이 동이의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는 허 생원의 기이한 인연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달빛과 메밀꽃이 어우러져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인간 내면에 있는 본능을 일깨우기도 하고, 혈육에 대한 끌림과 애정이 절로 솟구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는 건 아닐까? 9월이 되면 봉평에서는 1920년대 어느 날처럼 그렇게 메밀꽃이 지천으로 만개한다.
이럴 때 봉평길에서 메밀꽃을 보다가 왠지 익숙한 봉평장을 거닐다 보면 봉평의 토속적인 먹을거리인 메밀 음식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김치와 당면으로 맛을 낸 메밀전병이나 메밀묵무침, 시원한 김치 국물에 만 메밀사발 그리고 구수한 메밀칼국수까지, 하나같이 강원도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음식들이다. 소설 속 봉평장 거리에도 이런 구수한 음식들의 냄새가 어우러져 있었으리라.

 

특히 메밀전병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는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9월이 찾아왔건만 봉평에 갈 시간적 여유를 찾지 못했다. 지난가을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평을 생각하면서 메밀전병을 만들면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만 같다. 메밀전병은 사실상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음식이고, 기름에 지지는 떡의 일종이다. 1680년경의 문헌인『요록』에 그 기록이 나오니, 조상 대대로 최소 300년 이상 계속해서 먹어온 음식이다. 묽은 메밀 반죽을 팬에 부친 후 만두소와 유사한 소를 넣고 돌돌 말아서 만든 우리의 음식이다. 구수한 메밀전병을 초간장에 찍어 먹다 보면『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장터의 향취가 또다시 밀려올 것이다. 저녁 바람에 살랑거리는 아름다운 메밀꽃의 풍경과 함께.

 

▶메밀전병 만들기◀
<재료>
전병 반죽 : 시판용 메밀 부침가루 2컵, 정수한 물 1½컵, 달걀흰자 1개분, 소금 약간
전병 소 : 무 1/5개, 호박 1/2개, 표고버섯 3개, 당근 1/4개, 다진 김치, 당면
무 양념 : 참기름 1/4작은술, 깨소금₩소금 약간씩
호박/당근 양념 :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표고버섯 양념 : 간장 1/2작은술, 설탕 1/4작은술, 마늘/깨소금/참기름/후춧가루 약간씩
초간장 : 간장 1큰술, 식초 1½큰술, 설탕 1/2작은술, 깨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무는 채썰어서 끓는 물에 아삭한 맛이 완전히 가시지 않을 정도로 살짝 데친 후, 양념에 버무려
두고, 호박과 당근은 채썬 후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볶다가 소금, 후추를 마무리한다. 표고버섯은 끓는 물에 데친 후, 채썰어 양념한다.
2. 메밀가루와 물, 달걀흰자, 소금을 넣어 반죽한다.
3. ②의 메밀 반죽을 팬에 얇게 펼쳐 전병을 부친다.
4. ③의 메밀전병에 소를 올려 돌돌 만다.

 

▶메밀 색다르게 즐기기◀
1. 메밀막국수
<재료>
메밀국수 400g, 잘 익은 배추김치 200g, 오이 1개, 상추 8장, 소금 약간
양념장 : 고추장 1컵,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파 1큰술, 간장 1작은술, 식초 5큰술, 설탕 3큰술,
물 3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만드는 법>
1.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숙성시킨다.
2. 배추김치는 소를 살짝 털고 송송 썰어 준비하고, 오이는 어슷썰기 하여 소금에 살짝 절이고,

상추는 1cm 두께로 채 썬다.
3. 메밀국수는 삶은 후, 면발이 쫄깃해지도록 냉수에 헹군다.
4. 면기에 상추를 깔고, ③의 면을 보기 좋게 사리 지어 담은 후 양념장, 다진 김치, 오이를 보기

좋게 올린다.


2. 메밀묵밥
<재료>
메밀묵 450g, 김치 150g, 오이 1/2개, 김 1장, 멸치 국물 5컵, 깨소금 약간
양념장 : 청장 1큰술, 국간장 1큰술, 물 2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작은술,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만드는 법>
1. 메밀묵은 1cm 두께로 채 썬다.
2. 김치는 송송 썰고, 오이는 채 썰고, 김은 구워서 채 썬다.
3.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4. 면기에 메밀묵과 김치, 오이를 담고 멸치 국물을 부은 후, 김과 양념장을 곁들여 낸다.

 

 

 메밀전병반죽요령 맛있는 TIP


보통 메밀가루는 찰기가 부족해서 밀가루와 6:4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 마트에서 파는 메밀
부침가루를 사용하면 한결 편리하다. 메밀 부침가루를 처음 사용할 때는 1배의 물을 넣지만, 전병
을 능숙하게 잘 부치게 되면 1.5~2배의 물을 섞어서 반죽을 한다. 밀가루 반죽과 달리 반죽한 후
30분 이내에 부침을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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